위기를 넘은 20년 기술력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5-06-3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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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https://www.forbes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0297
언론사포브스코리아
기사등록일2025-06-30
업로드일2025-06-30
이차전지 장비기업 엠플러스를 이끄는 김종성 대표는 기술력 하나로 창업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다. 매출의 90% 이상을 해외에서 올리며 존재감을 키운 엠플러스는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수익 구조를 구축하며 차세대 배터리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이제 그는 전고체 배터리와 건식 전극 공정 등 다음 기술 과제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이 장비는 전극판을 분당 600장 생산합니다. 위층에서 보신 장비보다 두 배는 빠릅니다.”
지난 6월 10일 충북 청주 엠플러스 본사. 회색 철제 구조물 사이로 쉼 없이 돌아가는 노칭 장비를 바라보며 김종성 대표가 입을 열었다. 노칭(notching)은 이차전지 조립 공정의 시작점이다. 양극과 음극의 전극판을 정교하게 잘라내는 이 공정부터 스태킹(적재), 탭 웰딩(전류 집중화), 패키징까지, 엠플러스는 이 모든 조립 과정을 턴키로 공급할 수 있는 국내 유일 기업이다. 공정을 설명하는 김 대표의 목소리에선 기술력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이 드러났다.
엠플러스는 지난 2003년 설립된 이차전지 장비기업으로, 2017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창립 이후 20년 넘게 쌓아온 설계·제조 기술력을 바탕으로 배터리 조립 장비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져왔다. 파우치형을 넘어 각형까지 제품군을 확장해 국내외 완성차·배터리 제조사들과 협력을 넓혀가며, 최근에는 건식 전극 등 차세대 배터리 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울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김 대표는, 삼성SDI에서 파우치 전지 파트장을 지낸 뒤 독립해 엠플러스를 창업했다.
“당시 삼성SDI 생산기술 파트는 전지 사업화에 필요한 설비를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부서였어요. 저는 그중에서도 파우치 전지를 어떻게 장비로 구현할지 고민하고 설계하는 역할을 맡았죠. 그렇게 서로 다른 파트를 담당하던 파트장들이 의기투합해 창업에 나서게 됐습니다. 2003년 당시만 해도 전지 시장이 크지 않았지만, 애니콜 같은 휴대폰에 들어가는 소형 배터리를 국산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가능성을 봤습니다.”
엔지니어 출신 CEO의 주도 아래 확보한 140건 이상의 특허는 회사의 매출 성장에도 기여하고 있다. 김 대표는 “노칭 장비에서 적재(스태킹) 부분에 적용된 특허가 대표적으로, 처음엔 분당 60장 수준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600장까지 생산 속도를 끌어올렸다”고 소개했다.
“고속화 과정에서 ‘전지를 안정적으로 적재하는 방식’에 대한 특허를 다수 출원했어요. 특히 기존 방식에선 전지가 적재 중 충격을 받으면 깨지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이를 개선해 정지 상태에서 부드럽고 정확하게 적재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이 특허가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했어요.” 이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무거운 전극판을 자동으로 공급할 수 있는 장치를 자체 개발해 특허도 출원했다. 김 대표는 “사람이 들기 어려운 무게의 전극을 지게차 없이 처리할 수 있어 효율성이 크게 올라갔다”며 “이 외에도 스태킹 장비에 적용해 빠르고 안정적인 동작을 구현하는 특허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차전지의 주요 수요처는 전기차 시장이다. 그러나 2022년 이후 초기 수요가 한계에 다다르면서 이차전지 업계 전반이 일시적인 성장 둔화(캐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엠플러스는 지난해 매출 1287억원, 영업이익 101억원을 기록하며 2년 연속 흑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매출이 2023년 대비 2024년에 3분의 1로 줄긴 했지만, 기존 고객들의 정비 수요나 다양한 수익모델을 통해 손실을 보전했어요. 스타트업 등에는 노하우가 담긴 프리미엄 제품을 제공해 추가 수익도 얻고 있습니다. 단순히 장비를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지보수(AS)와 기술 기반 프리미엄 제품 제공으로 전체적인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고 있습니다.”
엠플러스는 매출의 90% 이상이 유럽과 중국 등 해외시장에서 발생한다. 김 대표는 “국내 고객사라도 수주는 헝가리, 미국 투자 건이 대부분이라, 국내 업체에서 발주를 받았다 하더라도 사실 해외로 나가는 셈이어서 수출로 잡힌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 배터리 3사의 매출 비중은 30~40% 선이며, 위험 분산을 위해 50% 이하로 유지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과거에는 이차전지 파우치형 조립 장비가 주력 제품이었으나 2021년부터는 각형 조립 장비까지 라인업을 확대해 유럽 시장에도 납품 중이다. 김 대표는 “초기에는 실험실용 설비부터 준양산 장비까지 단계적으로 구축하며 고객 신뢰를 확보했고, ‘해외 여러 사이트에서 우리가 납품한 장비가 고수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실증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술력과 수율 안정성을 적극 어필했다”고 말했다. 이런 강점이 유럽 고객사의 결정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진단이다.
현재 엠플러스의 비즈니스는 순항 중이라는 표현이 맞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수차례 위기를 겪으면서도 끝내 회사를 지켜낸 힘은 기술력이었다.
“2003년 창업 후 초반에는 디스플레이 장비도 함께 개발했는데, 2005년 고객사에서 PDP(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 사업을 갑자기 접으면서 힘든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당시 우리가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던 기술이었는데, 시장 자체가 사라진 셈이었죠. 직원 급여를 줄 돈조차 없어 아버지께 손을 벌려야 했습니다. 창업 멤버였던 직원들도 하나둘 떠나지 않을까 걱정이 컸고, 월세조차 감당이 안 돼 공장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2007년에는 기존 공장을 정리하고, 청주 외곽의 198㎡(60평) 남짓한 창고로 이사를 감행했습니다. 공동묘지가 뒤편에 있었고, 트럭 운전하던 중학교 친구에게 기름값만 쥐여주고 짐 나르는 걸 도와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절박했죠. 찬 바람 부는 겨울, 직원들과 함께 낡은 창고로 들어가며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이대로 접기엔 너무 억울하다’는 심정도 있었죠.”
두 손 들고 포기하기 직전, 회사와 그를 살린 건 2008년 1월에 걸려온 전화 한 통이었다.
“미국의 A123시스템즈에서 전기차용 장비를 납품할 수 있는지 문의한 겁니다. 고민할 새도 없이 ‘무조건 된다’고 답했습니다. 보통 장비 한 대 납품에 최소 6개월이 걸리지만, 이번엔 4개월 안에 끝내야 했습니다. 진짜 밤을 새워가며 작업했고, 그 덕분에 매출이 단번에 4억~5억원에서 9억원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이전의 2년 치 매출과 같았어요. 사실상 생존을 위한 반전의 기회였죠. 그 뒤로 같은 고객사에서 장비를 추가로 주문했고, GM 볼트의 배터리 조립공정 전체를 우리가 맡게 되면서 ‘세계 최초’ 타이틀도 달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SK와도 협업했고, 기아 레이 같은 국내 전기차 초기 모델에도 우리 장비가 적용됐습니다. 그 레이를 당시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시승한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저 차 안에 우리가 만든 배터리가 들어갔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이후에도 위기는 다시 닥쳤다. 유럽 재정위기와 폭스바겐의 ‘클린 디젤’ 사건이었다. 2011년 들어 유럽 재정위기, 이른바 ‘PIGS(포르투갈·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사태’가 본격화하면서 시장 분위기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당시까지 친환경 정책을 밀어붙이던 유럽은 위기가 닥치자 정책 기조를 급선회했다. 그 틈을 타 폭스바겐의 ‘클린 디젤’ 사기 사건까지 터져 전기차 산업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엠플러스의 최대 고객이었던 A123시스템즈와 SK도 타격을 입었죠. 우리가 의지하던 고객 기반이 무너져버린 겁니다. 이미 받아놨던 투자금도 줄줄이 바닥났고, 2014년 말에는 급기야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습니다. 재무제표상 자본이 무려 마이너스 100억원까지 떨어졌습니다. 그저 어떻게든 회사를 살려보겠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버틴 시기였죠. 다행히도 예전부터 꾸준히 뚫어놓았던 중국 시장에서 기회를 찾았습니다. 중국이 마침 본격적으로 전기차 산업을 육성하던 시기였고, 엠플러스도 그 흐름을 타고 활발히 수주를 늘려나갔습니다. 이때 실적이 다시 회사를 일으켜 세우는 기반이 됐고, 2017년 마침내 코스닥에 상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최근 중국 주요 배터리 업체들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생산을 확대하면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가격이 저렴한 데다 화재 위험이 낮고, 수명도 길어서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도 LFP 라인업 확대에 나서며 대응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LFP 배터리 대응을 묻는 질문에 김 대표는 “LFP는 양극재 중 하나일 뿐”이라고 답했다. 마치 어떤 원단으로 옷을 만들든 디자이너의 실력이 중요한 것처럼 엠플러스의 기술력은 그대로라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소재가 싸고 대량생산에 유리해 중국이 앞섰지만, 조립공정은 복잡성과 안정성이 중요한 영역”이라며 “중국 장비는 노동력 중심 설계라 미국·유럽 안전기준을 맞추기 어렵다. 우리는 각국 규제에 맞춘 설계 경험과 안전 대응 설계력이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엠플러스는 다가올 전고체 배터리 시대도 준비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기존에 많이 쓰는 리튬이온전지를 잇는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는다.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가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데 비해, 전고체 배터리는 이를 고체 전해질로 바꾼 방식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낮은 폭발 위험성과 더불어 약 5분 만에 80%까지 충전이 가능한 고속충전 성능, 기존 대비 약 2배에 달하는 주행거리 등 경쟁력이 뛰어나다. 다만 소재와 공정의 복잡성, 높은 제조원가, 양산화 기술 확보의 어려움 등은 여전히 상용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지적된다. 업계에 따르면 전고체 배터리는 2025~2027년 사이 양산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되며, 2035년에는 글로벌 이차전지 시장에서 약 1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대표는 전고체 배터리 양산화 시기에 대해 고객사와 소재 기술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답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전고체 배터리 양산은 고객사가 여건을 갖춰야 가능합니다. 지금은 소재 기술이 완전하지 않고, 공정도 고압환경(WIP) 같은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해서 기계화가 어렵습니다. 마리아나 해구보다 더 높은 압력을 요구하는 환경인데, 이 조건들이 완화되어야 생산성 있는 기계 구현이 가능합니다. 결국 LG·삼성·SK 등 셀메이커들이 공정에 맞는 소재와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장비도 양산 단계로 갈 수 있어요. 우리 역량으로는 1년 내 양산 대응이 가능하지만, 시점은 고객의 기술 성숙도에 달려 있습니다.”
엠플러스는 지난 4월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공시에서 2028년까지 매출 7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어 2030년까지는 매출과 기업가치 모두 1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김 대표는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자신 있는 조립 공정을 바탕으로 파우치형, 각형, 전고체 등 다양한 배터리 형태에 대응하는 장비 포트폴리오를 확장 중이며, 특히 전고체 배터리 대응을 위한 드라이룸도 구축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의 습식 공정에서 건식 공정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어, 이 분야에서는 국내외 경쟁사들과 동일 선상에서 출발할 수 있다”며 “프레싱 장비 같은 핵심 설비들을 자체 개발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주 지역과 관련해선 중국, 유럽, 미국 등 전 세계에 고객사가 있고, 특히 유럽·미국의 배터리 스타트업들과도 적극적으로 협업 중이다. 그는 “수십 년간 배터리 장비를 만들어온 경험이 스타트업들에 큰 신뢰를 주고 있으며, 롤 프레스 같은 고생산성 장비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의 경영 철학은 단단한 조직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직원들이 회사에서 ‘재미’, ‘배움’, ‘보상’ 중 적어도 하나는 느낄 수 있어야 오래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기술 중심 회사인 만큼, 구성원이 기술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활발한 소통, 갈등의 건설적 해소로 단단한 조직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제 경영 철학입니다. 단합된 조직문화가 곧 경쟁력입니다.”
출처 : 포브스코리아(Forbes Korea)(https://www.forbeskorea.co.kr)